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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바닥에 발을 들였을 때, 나는 스스로를 전형적인 ‘요즘 애들’이라 생각했다. 퇴근은 칼같이, 회식은 최소한으로, "일은 일일 뿐 삶은 퇴근 후에 시작된다"는 명제를 신봉하던 평범한 사회초년생 말이다. 하지만 첫 출근 날, 내 상식은 보기 좋게 깨졌다. 정시 퇴근은 분명 6시인데 선배가 툭 던진 한마디가 발목을 잡았다. “신입사원이라면 적어도 6시 반까지는 자리에 남아 하루를 정리해야지.” 그 말은 일종의 규칙처럼 매일 반복됐다.
전체 직원 15명 남짓한 작은 사무실. 사수나 체계적인 교육 따위는 없었다. 나보다 몇 달 먼저 왔던 또래들이 소리 소문 없이 퇴사했다는 얘길 들었을 때 직감이 왔다. ‘아, 여긴 얌전하게 굴어서는 버틸 수 없는 야생이구나.’ 당시 "90년대 생이 온다"는 책이 유행이었지만, 이 회사에 90년대 생은 나 혼자였다. 기댈 곳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내 목표는 오직 하나, 내 멘털과 월급을 지켜내는 ‘생존’이었다.
정글 같은 작은 조직을 오히려 역이용해 나를 지켜냈던 영리한 신입사원 생존 전략 4가지를 공유한다.
1. '내 일'의 경계를 넓혀 몸값 올리기 (ROI 마인드셋)
중소기업은 업무 경계가 지독하리만큼 모호하다. 한 사람이 두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맡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불쑥 끼어드는 타 부서의 요청이 곧 내 오늘 업무가 되곤 한다. 처음엔 짜증이 났지만 판을 다르게 읽기로 했다. 회사란 철저히 투자 대비 효율을 따지는 곳이다. 비용 대비 플러스 요소를 보여줘야 고용한 의미를 찾는다. "받은 돈만큼만 일하겠다"는 마인드는 내 성장판을 닫고 입지만 좁힐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경영진에게 “이 사람 뽑길 정말 잘했다”는 느낌을 주기로 했다. 일이 예상보다 빨리 끝나면 숨기지 않고 공유한 뒤, 다음 할 일을 먼저 제안했다. 남는 시간에는 난잡한 업무 기록을 데이터베이스화하거나 반복 업무를 자동화할 템플릿을 만들었다. 이는 회사를 위한 맹목적 충성이 아니다. 내 일의 기준을 스스로 올려, 향후 연봉 협상이나 이직 시 사용할 강력한 포트폴리오를 축적하는 영리한 과정이었다.
2. 술자리 대신 '인사'로 신뢰 자본 쌓기
작은 회사일수록 끈끈한 정을 핑계로 퇴근 후 술자리를 선호한다. 하지만 나는 술도 못 할뿐더러 주말까지 이어지는 사적인 관계가 큰 부담이었다. 술자리로 라포(Rapport)를 쌓을 수 없다면 업무 시간 내에 확실한 신뢰를 만들어야 했다. 내가 선택한 가장 가성비 좋은 무기는 '과할 정도의 인사성'이었다.
아침 출근길, 어색하게 고개 숙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인사하지 않았다. 사무실을 크게 한 바퀴 돌며 모든 선배와 눈을 맞추고 우렁차게 인사했다. 퇴근할 때도 눈치 보며 슬그머니 사라지는 대신, 큰 목소리로 또렷하게 퇴근을 선언하듯 인사했다. 복도나 탕비실에서 마주쳐도 절대 스마트폰을 보는 척 눈을 피하지 않고 밝게 웃으며 목례를 건넸다.
유치해 보이지만 작은 회사일수록 '태도'가 곧 실력으로 직결되는 순간이 많다. 매일 팍팍한 출근길에 밝은 얼굴을 보여주는 신입사원은 무의식적으로 이미지가 좋아질 수밖에 없다. 인사 하나 잘 정립해 둔 덕분에, 나는 흔히 겪는 사내 잔소리의 표적에서 자연스럽게 비껴갈 수 있었다.
3. 사내 소문과 파벌에서 완벽히 거리 두기
사무실 규모가 작을수록 인간관계의 밀도가 지나치게 촘촘하다. 탕비실이나 담배 타임에서 나오는 은밀한 소문과 험담은 신입사원에게 꽤 흥미진진한 가십일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조직의 소문은 단순한 가십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편을 가르는 '파벌'로 이어진다. 그 싸움에 끼어드는 순간 내 업무 협조는 막히고 직장 수명은 단축된다.
동료들과 가벼운 스몰토크는 참여하되, 타인에 대한 평가로 흘러갈 기미가 보이면 "거래처 메일 건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다"며 영리하게 자리를 빠져나왔다. 누군가 뒷이야기를 꺼내며 동조를 유도할 때도 절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 정말요? 저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전혀 몰랐네요”라며 무해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조직 속에서 때로는 '사내 역학 관계를 아무것도 모르는 중립'으로 남는 것이 내 평판을 지켜내는 최고의 방어막이다.
4. 기본 중의 기본, 압도적인 '근태'로 기선제압하기
계약서상 출근 시간이 9시라면 8시 59분에 들어오는 것이 규정상 문제는 없다. 하지만 겉으론 쿨한 척하는 관리자들도 속으로는 출근 시각을 가장 예리하게 지켜본다. 8시 59분에 헐떡이며 들어와 9시 반이 되어서야 업무 모드로 전환되는 직원을 바라보는 조직의 평가는 야박하기 그지없다.
나는 초반에 확실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30분 일찍 도착하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었다. 지하철 연착 같은 돌발 변수에도 지각이라는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함이었다. 남들보다 먼저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업무 스케줄을 정리하는 모습은 선배들에게 ‘기본기가 단단하고 흐트러짐 없는 사람’이라는 묵직한 신뢰감을 심어주었다.
이 근태 관리는 노예 선언이 아니다. 내가 나중에 업무를 하다 예상치 못한 실수를 저질렀을 때, "평소에 그렇게 성실한 친구가 오죽했으면 그랬겠어"라며 너그럽게 참작 받을 수 있는 강력한 '신뢰 자본'을 미리 저축해 두는 보험이었다. 작은 회사에서 신뢰는 예상치 못한 순간 아주 강력한 방패가 되어준다.